임브리관(국가 지정 중요 문화재)

메이지가쿠인이 시로가네에 개교한 것은 1887년(메이지20년)9월15일이지만, 요즈음의 건물 건축 상황을 보면, 개교까지 보통학부 교사 및 강당의 산담 관과 같은 보통학부 기숙사의 햅번관이 건축되어 있던듯 하다.

한 편, 구내의 서북쪽 (지금의 고등학교 교사 근처)에 세개의 동, 또 구내의 동남쪽 두개 동의 서양관이 연이어 지어졌다. 당시 학원에서 교육을 담당한 선교사들이 살았던 츠키지 거류지에서 학원까지 너무나 멀었으므로, 개교를 전후로 선교사의 주거지를 준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마자키 토손(島崎藤村)의 소설 「벚꽃의 열매가 익을 때」에 '... 반대편 강당 앞에서부터 부지의 뜰에 나란히 연속해 있는 3동의 서양관은 모두 스테키치(捨吉:시마자키 토손)가 교육을 받는 미국인 교수들의 거처다. 하얀 스커트를 시원한 바람에 날리며 뜰을 걷고 있는 선생님의 부인도 보인다.......'라고 쓰여있던 서양관은, 서쪽의 도로 근처에서부터 1호관, 2호관, 3호관으로 불리우고, 동남쪽의 2동이 4호관, 5호관이었다. 이 중, 홀수관에는 프레스비테리안(장로파), 짝수관에는 리폼드(개혁파) 선교사들이 살았다.

이 건물은 이른바 5호관으로 W.임브리(W.Imbrie)박사가 오랜 세월동안 살았던 이유로, "임브리관"으로 불리웠다. 1889년(메이지22년)경의 건물로, 목조 기와 2층 건물로 건평은 1·2층 모두 371.5평방 미터, 건축 양식은 187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목조주택 양식이다. 1964년(쇼와39년)에 국도1호선의 확장공사에 따라 현재의 장소으로 옮겨져 1997년 복원되었다.

임브리관은 서양식 주택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선교관으로서 귀중한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는, 전국적으로 1·2위를 다투는 건축물이다. 1998년 국가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임브리관에 관련된 이야기

  • '임브리관' 국가 지정 중요 문화재로!
  • 본격적인 서양관 임브리관
    동경대학 대학원 공학계 연구과 교수 스즈키 히로유키(鈴木博之)씨
  • 건축가의 눈에 비친 임브리관
    '문화재를 살려 사용한다' 우치이 쇼조(内井昭蔵) 건축설계 사무소 시마자키 요시하루(島崎義治)씨
  • 복원가의 눈에 비친 임브리관
    「문화재의 복원이란 무엇인가」 문화재 건축물 보존 기술 협회 다카무라 코이치(高村功一)씨
  • 임브리관 복원 Q&A
  • 임브리관 연표
  • 윌리엄 임브리(William Imbrie)의 생애